프랑크 왕국은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 게르만족이 세운 왕조입니다. 이 글에서는 프랑크 왕국 초기를 이해하기 위해, 카롤링거(카롤루스) 왕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왕조의 건립 배경과 피핀, 카롤루스 대제의 시기의 주요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카롤링거 왕조 건립의 배경
카롤링거 왕조는 메로빙거 왕조 다음으로 나타났으며 프랑크 왕국의 후반인 751년부터 987년까지 존속한 왕조입니다. 피핀에 의해 왕조가 개창되었으며, 중세 유럽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상금지령(726)으로 인한 동서교회의 분열이 카롤링거 왕조가 만들어지는 배경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레오 3세는 대토지소유자인 동시에 성상숭배의 경향이 강한 수도원의 세력을 억제하려는 속셈으로 성상 금지령을 반포하게 됩니다. 서로마 교황은 문맹인 게르만족의 교화 위해 성상 사용이 필요했던 관계로 불복하고 맙니다. 이를 계기로 서로마교황은 비잔티움 황제와 갈등이 커진 상태였으며, 비잔티움 황제를 대신하여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교회를 지켜 줄 새로운 보호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한편,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드족이 팽창을 계속하여 교황은 몹시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자연 프랑크왕조의 지원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피핀이 왕위에 오를 뜻을 전하고 후원을 요청했을 때 교황 이를 승인하여 새롭게 카롤링거 왕조가 세워집니다.
2. 피핀(741-768)의 통치
피핀은 카롤링거 왕조 개창 후 롬바르드족을 격파합니다. 당시 롬바르드 족은 라벤나를 점령하고 로마를 직접 위협하였고, 교황 스테판 2세는 직접 프랑크 왕국으로 가서 피핀에게 도유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피핀은 롬바르드족을 격파하고 라벤나를 포함한 중부이탈리아의 영토를 교황에게 기증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황령(Papal State)의 시작입니다.
3. 카롤루스 대제(771-814)의 통치
카롤루스 대제는 수많은 영토 확장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롬바르드족을 완전 평정하여 직접적으로 통치하게 되었고, 색슨족을 굴복시켜 이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습니다. 동으로 진출하여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유고의 일부까지 정복하였고, 정복전쟁에 성직자를 동반하여 피정복민들의 민심을 수습합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에스파냐의 이슬람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고, 피레네 산맥 남부 카탈로니아 지역에 에스파냐 변경주를 설치해 이슬람과 완충지대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는 영토를 매우 크게 넓혔습니다. 동으로는 경계선을 엘베강까지 확장하고, 서북으로는 에스파냐와 브르타뉴 지방을 제외한 대서양과 북해연안으로부터, 남으로는 로마 이북의 이탈리아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통치한 시기는 문화적으로도 융성한 시기였으므로,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도 불립니다. 그는 알퀸 등 학자를 불러 Aix-la Chapel에 궁정학교 개설하고 고전, 라틴어, 문법, 논리학 등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부흥정책에 따라 수도원에서도 고전작품의 필사를 비롯한 고전연구가 활발해졌고, 라틴어 문헌도 수집하여 라틴 문화 부흥하였으며 라틴어가 국제어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수도원에 의한 고전연구나 필사는 후에 중세 문화가 발전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소문자가 제정됩니다. 그 전의 메로빙 왕조 시대의 글씨체는 너무 복잡해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수도원에서 카롤링 소문자를 개발하여 글자체가 명확하고 띄어쓰기가 분명해졌습니다. 알퀸에 의해 널리 확산되었고, 15C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재현되어 오늘날 알파벳 소문자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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